2014년 4월 16일, 국민은 TV를 통해서 세월호 침몰 사고를 생생하게 지켜봤다. 국민은 마땅하고 신속한 구조 활동을 기대하고 염원하였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과 보호를 약속한 국가는 그저 무능했다. 그 순간 국민은 두렵고 섬뜩했을 것이다. “나와 내가족도 저렇게 되는 거 아냐. 국민의 생명이 위급할 때 도대체 국가는 뭘 하고 있는 거야?”


2014년 12월, 직장인들은 분노했다. 2013년 집권 여당이 주도한 세법 개정으로 직장인의 연말정산 환급이 되레 세금 폭탄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직장인의 분노에 놀란 정부와 집권 여당은 황급하게 당정협의를 거쳐 보완 대책을 마련하였다. “우리 월급쟁이가 봉(鳳)이냐? 국가가 국민의 안전도 지켜주지 못하면서 무슨 낯으로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는 거야.”


2015년 6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이 온 국민을 두려움과 공포 속에 빠뜨렸다. 정부 보건 당국의 늑장 대응은 사태를 키웠으며 감염경로의 온상이 된 대형병원을 비호하였다. 가장 우선시 하고 챙겨야할 국민의 안전은 뒷전이었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보다 돈(기업의 이익)이 더 중요해?”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의 공통점은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이 위태롭게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큰 문제는 국가에 세금을 내고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국민은 전혀 그렇지 못한 현실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사고를 통해서 대한민국 국민은 저마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국가는 우리나라 아니던가. 나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민이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의 임무로서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곧 기본권 보호의 첫 번째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국민이 생명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다른 기본권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국민의 생명 보호는 국가의 임무이기 이전에 국가의 존재 이유이다. 이 땅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국민은 국가가 부여한 납세 의무, 병역 의무, 근로 의무, 교육 의무 그리고 기타 의무 등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국가는 국민이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형벌제도까지 동원하는 엄청난 존재이다. 그러나 국가가 존재 목적을 방기(放棄)할 때, 국민은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지금 이 시점에서 일차적인 책임은 대통령과 정부에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로서 직접 선거에 의해 대통령을 선출한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국가 원수로 삼고 국가를 대표하게 한다. 또한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정부 부처의 각료를 임명하며 행정부를 책임진다. 대통령과 정부는 그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동시에 삼권분립에 의한 독립적인 국가 권력기관인 입법부와 사법부는 그들의 존립 목적에 부합한가? ‘독립적’이라는 단어가 왠지 낯설고 부끄럽지 않은가? 입법부와 사법부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민주주의 국가는 자발적인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된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국민은 봉(鳳)이 아니라 대한민국 최고의 절대권을 가진 주권자(主權者)이다. 대통령과 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존재하는 것은 국민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민의 세금이 있기에 그들의 밥벌이도 가능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월호 참사, 연말정산, 메르스 사태 같은 일련의 사건사고에 대해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멀리서만 바라보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로마서 13장 말씀대로 그리스도인은 국가 권력에 순응하고 복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다고 국가의 잘못된 부분이나 불의에 대해서까지 눈을 감고 복종해야 하는 것이 맞는가.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국민이면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임을 기억하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완전히 찢어졌다. 곧 국가, 민족, 인종, 신분 등의 모든 장벽(죄 포함)이 무너지고 제거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주관하고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더 이상 국가, 민족, 인종, 신분이 아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또렷이 하나님께 나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국가를 선택하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국가는 단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이다. 우리 육신의 안전과 보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국가가 필요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도 우리에게 국가 권력에 복종하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가 행하는 불의까지 침묵하며 복종하라고 말한 것은 결코 아님을 기억하자. 하나님 나라에는 결코 불의가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불의에 침묵한다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타협하며 사는 것이다. 아모스를 위시한 성경 속의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라. 그들은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서 외쳤다.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힘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암 2:6-7).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 곧, 그리스도인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고 하였다. 세상 사람들처럼 돈과 권력을 쫓아가느라 온통 마음을 그 곳에 두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지금 이 순간 바울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보자. 인자하신 주님이 용서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연약하고 고통당하는 가난한 자들에게 있다. 그래서 예수님도 우리에게 굶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된 자(외국인 노동자),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와 같이 연약하고 고통당하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주께 한 것(마25:40)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우리가 지극히 작은 자와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삶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첫째 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그리고 주의 명령을 따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2015.7.3 ©광화문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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